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양장리 전투 (문단 편집) == 중공군의 진격 == [[중국 인민해방군|중공 인민해방군]]이 [[6.25 전쟁]]에 난입하여 기세를 올린 북한, 중공 연합군이 서울을 재점령하고 남쪽으로 진격하고 있는 와중, UN군은 1월 25일을 기해 작전명 선더볼트(Thunderbolt)를 발동, 중공군의 진공을 무디게 하고 서울 수복을 위한 반격의 발판을 만들려는 일련의 군사행동에 나섰다. 당시 UN군에서 미군과 영국군, 캐나다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있었던 [[튀르키예군]] [[여단]]은 미 제1군단 휘하 25[[사단(군사)|사단]]에 배속되어 중공군 50군 49사단 447[[연대(군대)|연대]], 150사단 448연대가 전개돼 있는 수원-용인 일대를 목표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 시점에서 중공군은 이미 3차에 걸친 공세로 병참선 유지 능력이 고갈되어 사실상 [[공세종말점]]에 도달했다고 판단, 주력을 [[한강]] 이북으로 철수시키고 일부 병력을 [[수원]]-용인 일대에 남겨 지연전을 수행하려 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UN군의 공세개시 시점이 약 10일 정도 늦을 것이라 예상했고, 때문에 1월 25일 선더볼트 작전이 개시되던 당시 중공군은 아직 철수 및 지연전 준비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접적선만 텅 빈 상태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UN군은 작전개시 첫날 큰 저항을 받지 않고 상대적으로 수월한 진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미 튀르키예 여단은 1월 26일 금양장리로 진격할 때 해방된 현지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